이번에는 아동복지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아동복지도 사회 발전과 여러 상황에 따라 변화하였습니다. 역사적 배경과 변천과정에 대해 시작해 보겠습니다.
산업화 이전의 고대사회와 중세사회에서는 아동복지와 관련하여 일차적인 책임은 부모에게 있었습니다. 또한 요보호아동은 대부분 종교단체를 통하여 보호되었습니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에는 국가와 사회가 개입하게 되므로써 부모 및 민간단체의 한계성을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산업화 이전의 아동복지 역사적 배경
고대사회에서 아동은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종족이나 부족의 생존과 보호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 여부에 따라 인정받았으며, 아동의 생명은 종족 보존의 수단적 가치로만 인정되었습니다. 따라서 허약하거나 질병 또는 장애를 가진 아동은 희생을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중세사회는 종교적 사회적 영향이 강했던 시대로 교회를 중심으로 한 종교단체에서 아동을 보호하였습니다. 즉 기독교적 관점에서 자선사업의 일환으로 아동복지가 전개되었으며, 부모가 없는 아동과 유기된 아동들을 보호하는 일을 주로 담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동은 장원을 유지하기 위한 경제적이고 군사적인 수단으로도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중세사회의 아동복지는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자선사업이 이루어졌으나, 아동의 권리나 욕구 및 존엄성에 입각한 서비스는 발달되지 않았습니다.
산업화 이후의 아동복지 역사적 배경
산업혁명의 시작과 함께 농노제도와 장원제도로 대표되던 중세 봉건제도가 붕괴되면서 대부분의 농노들은 공장의 노동자가 되었고, 아동들 역시 산업현장의 노동자로서 중요한 자원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산업화 이전의 사회구조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빈곤, 실업, 노사문제, 주택문제 및 아동, 청소년, 노인 등 다양한 사회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근대사회 아동복지의 역사적 배경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봉건제도가 점차 붕괴되고 자본주의제도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규모의 다양한 사회문제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에 대한 책임은 국가적인 차원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영국은 국가가 빈곤 계층을 책임지는 구빈법을 제정하여 아동들을 법에 의하여 보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601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사회문제, 즉 아동의 문제들을 국가가 개입하여 해결하기 위한 최초의 시도였습니다. 이 법에 의해 요보호아동들이 위탁보호와 거택보호를 받았으며,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 영향을 주게 되었고, 오늘날 아동복지의 기원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 아동복지의 역사적 배경
20세기에 이르러 아동은 인격적 존재로서 받아들여지게 되었고, 이들의 다양한 문제와 욕구에 대해 사회적인 예방과 관리를 위한 체계적인 제도가 마련되었습니다. 아동복지와 관련하여 국가 책임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던 대표적인 것이 1909년 미국의 백악관회의입니다. 당시 루즈벨트 대통령은 아동을 위한 부모의 역할과 가족생활의 중요성을 언급하였습니다.
또한 아동복지의 대상이 요보호아동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아동으로, 보편주의적 아동복지가 도입되었습니다. 1933년에는 아동청소년법이 제정되었고, 20세기 중반 이후 위탁보호와 아동시설은 아동의 개별적 욕구에 맞게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발전하였습니다.
대한민국의 아동복지 변천과정 중 전통사화의 아동복지
1) 삼국시대
삼국시대에 아동은 인격체가 아닌 가계를 계승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보호 대상이였습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2대 남선왕 15년에 백성들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국고를 열어 이들을 구휼했으며, 3대 유라왕 5년 환과고독노병(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사람, 늙은이, 병든이)을 요보호대상자로 정하여 무료급식과 양육을 국가 차원에서 시행하였습니다.
2) 고려시대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에는 자비사사에 입각하여 전쟁과 흉년으로 생긴 구걸하는 아동, 버려진 아동들을 사찰에서 수용, 양육하여 승려 또는 사역승으로 양성하는 일이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제6대 성종 13년 고아에게 10세까지 식량을 지급하였고, 그 이후에는 원하는 곳에 거주하게 하였습니다. 충목왕 3년에 관립의 영아원이라 할 수 있는 해아도감을 설치하여 유아들을 보호 양육하였습니다. 또한 민간에서도 고아를 양육하여 양자녀 또는 노비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고아의 민가 수양을 빌미로 인신매매, 유괴, 약탈 등이 상행하는 폐단도 나타났습니다.
3) 조선시대
엄격한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에는 고려시대보다 한층 발전하여 현종 2년에 요보호아동 보호에 관한 법령이 제정되었습니다. 이에 의거해 한성 각부에서는 유기아에 대해 관의 허가에 따른 민간 입양이 실시되었으며, 이들에 대한 옷값도 지급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0세가 되면 양육한 사람에게 이들을 사역할 권리가 부여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숙종 22년에 수양임시사목과 영조 20년에 속대전 속에 동사목이 편찬되었습니다. 이후 정조 7년에 이를 확대, 통합하여 친족 부양, 수양관계의 보호, 집단 수용의 보호를 원칙으로 하는 자휼전칙을 편찬하여 부랑 및 유기아동 보호법령의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자휼전칙은 흉년에 당하여 걸식하거나 버림받아 굶주리는 아동이 많아지자 정조가 특별히 윤음을 내리고 사목을 정하여 시행 방법을 규정하였습니다. 이러한 제도의 실시는 아동 구제사업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일정 부분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으며, 그 근본정신인 영국의 구빈법과도 상통하는 우리나라 전근대의 대표적 아동복지법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근대의 아동복지 변천과정
근대적 육아사업은 1855년 프랑스 메스트로 신부에 의한 고아 구제사업이 효시가 되었습니다. 이후 고아원의 역사를 보면 파리외방선교회가 설립한 조선영해회는 1854년에 고아원을 설립하였으며, 1880년에는 프랑스 쟝블랑 신부가 양로원과 고아원을 한양에 설립하였습니다. 1886년 미국 북장로교의 언더우드는 고아들을 모아 예수학당과 구세학당을 시작하였고, 1888년에는 조선영해회가 종로의 수녀원 부속건물로 고아원을 설립하여 아동을 양육하였습니다. 1892년 영국성공회 선교사 랜디스는 인천에 고아학원을 설립하였고, 이어 1905년에는 이필화가 경성고아원을 설립하였습니다. 이처럼 서양 선교사들에 의한 시설보호제도의 도입은 이후 우리나라의 아동보호에 있어 수용시설 중심으로 발전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대의 아동복지 변천과정
1) 사회구호적 차원의 아동복지(1945년~1960년)
사회구호적 차원의 아동복지사업은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전쟁고아, 기아 및 부랑아들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이들을 위해 국가 및 국내외 민간단체에서 많은 아동보호시설을 설립하여 응급구호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수용시설 중심의 아동보호사업은 1950년대 급속하게 증가하여, 1960년도 전국에 472개소로 전체 사회복지시설 592개소의 약 80%를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아동복지는 국가 책임의 원칙이나 전문화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없었으며, 빈곤계층의 아동을 대상으로 민간과 해외 원조에 의존해 운영되는 사회구호사업이 대부분이었습니다.
2) 잔여적 아동복지정책기(1960년대 초~1970년대)
1960년대 초 생활보호법과 아동복리법이 제정되어 요보호다동에 대한 국가 책임의 원칙이 처음으로 법제화되었습니다. 당시 복지입법의 대부분은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경제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도록 그 한계를 두고 있었습니다.
아동복리법의 내용에는 성장론에 기초한 잔여적 아동복지관과 가정보호의 강조가 표현되고 있습니다. 아동복리법의 보호 대상은 '보호자로부터 유실, 유기 또는 이탈되었을 경우, 보호자가 아동을 양육하기에 부적당하거나 양육할 수 없는 경우'로 명확히 한정하여 이 법에 의한 아동복지제도는 사후조치적이고 잔여적인 성격을 갖고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 국가개입을 최소화하는 잔여적 복지정책이 지속되었으나, 외원기관의 철수 및 사업축소는 아동보호에 대한 국가 개입을 불가피하게 만들었습니다.
3) 통합적 아동복지정책기(1980년대~)
1970년대 후반 산업화, 도시화, 핵가족화, 가치관의 변화로 소년소녀가장 문제, 가출아동, 부랑아동, 비행아동, 정서장애아동 신체장애아동의 문제뿐만 아니라 저소득층 또는 일반가정에 방치된 아동문제 등 광번위하고 다양한 아동문제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사회 참여가 증가하고 보편주의 원칙에 입각한 전 국민의 의료보장과 소등보장이 국가 정책의 중요 영역이 되면서 아동복지의 대상이 요보호아동뿐 아니라 일반 가정의 아동에게 까지 보편화되어야 한다는 새로운 아동복지관이 대두되었습니다. 1991년대 외원의 감소와 국가의 지원강화 그리고 일반 아동의 복지까지 도모하는 아동복지의 변모를 시도한 시기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실제 국가의 아동복지에 대한 절대적 지원의 수준은 꾸준히 상승하였으며, 아동복지법에 일반 아동의 복지를 위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상의 변화과정을 정리해 볼 때 분명 우리나라의 아동복지는 점차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과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또는 노력이 구체적인 사업과 성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쉽게 동의를 얻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아동복지법을 위시한 다양한 관련 법안의 제정을 통한 변화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실제 아동복지는 여전히 요보호아동 문제에 대응하는 사후적이고 잔여적인 성격의 사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국가의 아동복지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요보호아동에 국한되지 않는 보편적이며 포괄적인 아동복지 정책의 수립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점차 복합적이고 동시발생적인 아동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전문적인 아동복지 서비스의 개발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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